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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성벽걷기] 역사의 현장, 남한산성에서

스티븐 세상살기

by 하승범 위드아띠 2011.10.1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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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 있지만 가끔 식당을 방문한 기억 뿐이었던 남한산성을 회사 추계야유회를 통해 처음으로 성벽따라 걷기를 하였다.  모처럼 역사의 현장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011-10-08

# 요즘 크게 흥행하는 영화 '최종병기 활'의 역사무대로 치욕스러운 역사의 현장이지만 서울 근교에 이런 탐방로로 구성된 산행공간이 있다는게 좋다. 이곳은 북문(전승문)이다.

# 장경사 암문 위에서, 장경사는 조선 인조 때 승려들을 징집하여 남한산성을 축성하도록 하고 그 후에는 승군을 주둔시키지 위해 건립하였다는 절이다. 

# 동문(좌익문), 지금 남한산성 성터 곳곳에서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시멘트로 보수되는 성벽이 왠지 안스럽다.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어도 좀 더 예전 방법을 사용하면 안되었을지 아쉽다. 남한산성은 인조 2년(1624년)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만에 완공하고 완공 한지 10년이 지나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 남문(지화문), 남한산성의 4대문 중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는 문이란다. 1636년 12월 14일 청 태종의 10만 대군을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가던 발길을 돌려 인조의 피난 행렬이 이 문을 지나 남한산성으로 들어와 47일간의 짧은 항전을 시작했다.
 

# 남문에서 수어장대로 가는 길로 영춘정까지의 오르막 성벽이다. 남한산성은 이 길의 끝 청량산(497.9m) 을 중심으로 연주봉, 망월봉, 벌봉 등 해발 500m 내외의 봉우리를 연결해 쌓은 성벽이다. 본성 9.05km, 옹성 2,71km를 합해 11.76km의 성곽이 둘러쌓인 2.3㎢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수어장대,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 내 5개의 장대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다. 영조 27년 누각을 개축하며 2층 안쪽에 무망루라는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 무망루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다온 효종의 북진정책 의지가 담긴 뜻이라고 한다.

회사 행사로 수어장대에서 종로로 내려와서 서문(우익문)을 가보지 못했다. 산성의 정문인 남문(지화문)을 통해 남한산성에 들어왔던 인조는 47일째 항복을 위해 삼전도로 향하기 위해 그 서문을 나섰다고 한다. 1637년 정월 그믐 인조는 청 태종을 향해 세번 절하고 아홉번 이마를 찧어 어깨를 피로 적시는 항복례를 해야했다. 이런 웅장한 산성을 축성하고도 그런 치욕을 당했다. 역시 외교는 국방력에 기반이 있어야 한다. () 201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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